『브람스를 좋아하세요...』 프랑수아즈 사강 — 폴은 결국 돌아갔고, 우리는 모여서 그게 왜 그렇게 화가 나는지 이야기했다 일시 6–7월 시즌 두 번째 모임 · 책 프랑수아즈 사강 장편소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79, 김남주 옮김)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프랑수아즈 사강 — 폴은 결국 돌아갔고, 우리는 모여서 그게 왜 그렇게 화가 나는지 이야기했다 일시 6–7월 시즌 두 번째 모임 · 책 프랑수아즈 사강 장편소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79, 김남주 옮김)
Sangwoo Yang
@IGhost-P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프랑수아즈 사강 — 폴은 결국 돌아갔고, 우리는 모여서 그게 왜 그렇게 화가 나는지 이야기했다 일시 6–7월 시즌 두 번째 모임 · 책 프랑수아즈 사강 장편소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79, 김남주 옮김)
사강이 스물넷에 쓴 네 번째 소설이다. 열아홉에 『슬픔이여 안녕』으로 등단하며 "프랑스 문단의 매력적인 작은 괴물"이라 불린 그가, 1959년에 내놓은 이 짧은 연애소설은 지금까지 고전으로 남았다. 줄거리는 단순하다. 서른아홉의 실내장식가 폴, 5년째 그녀를 함부로 대하는 연인 로제, 그리고 어느 날 나타나 온 마음을 바치는 스물다섯의 변호사 시몽. 한 여자와 두 남자.
제목이 핵심이다. 사강은 출판사에 "반드시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여야 한다"고 고집했고, 물음표가 아니라 말줄임표로 끝나야 한다고 인터뷰에서 강조했다. 당시 프랑스에서 브람스는 그리 사랑받지 못한 작곡가였다. 그래서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시몽의 데이트 신청은, 사실 "당신은 아직 당신 일상 바깥의 것을 좋아할 여유가 남아 있나요?" 라는 질문이 된다. 거기에 브람스가 14살 연상의 클라라 슈만을 평생 사랑한 일화까지 겹치면 — 폴보다 14살 어린 시몽의 마음이 그대로 포개진다.
사강 본인이 자기 작품의 두 테마를 "고독과 사랑"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 책은 정확히 그 두 단어 사이에서 흔들리는 한 사람의 기록이다.
"폴, 정신 좀 차려." 읽는 내내 화가 났다. 폴이 내 친구였다면 카페에 두 시간쯤 붙잡아 앉혀두고 기어이 정신을 차리게 했을 것이다. 자길 함부로 대하는 로제는 못 떠나면서, 자길 떠받드는 시몽 앞에서는 또 미적댄다.
"어릴 땐 시몽, 어른이 되니 로제." 고등학생 때 읽었을 땐 시몽이 너무 가여워서, 나라면 당연히 시몽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어른이 되어 다시 펴 보니 거짓말처럼 로제 쪽으로 마음이 기운다. 폴이 자신을 두고 "늙었다"고 말하는 그 서른아홉의 무게가, 이제는 조금 읽히는 것 같다. 같은 책인데 어릴 때와 어른이 되어 읽을 때의 답이 이렇게나 다르다.
"이건 사랑이 아니라 불안의 관리다." 폴에게 로제는 사랑이라기보다 의무에 가깝다. 사랑해서 곁에 있는 게 아니라, 그 관계를 놓는 순간 찾아올 불안이 두려워 붙잡는 것이다. 반대로 시몽은 너무 새로워서 오히려 안정감을 주지 못한다. 지금 봐도 14살 차이가 낯선데, 1950년대 파리에서 연상연하 커플을 향한 시선은 훨씬 더 무거웠을 것이다. 폴이 끝내 그 시선을 넘지 못한 것도 이해는 간다.
"질문 하나가 사람을 깨운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한 줄 덕분에, 폴은 자신이 음악도 책도, 심지어 자기 자신마저 잊고 살아왔음을 깨닫는다. 시몽은 폴에게 "당신은 지금 잘못 살고 있다"고 거울을 들이댄 사람이다. 다만 자각이 곧 변화로 이어지진 않아서, 폴은 결국 익숙한 자리로 되돌아간다. 깨달음과 선택은 다른 문제라는 걸, 이 소설은 잔인할 만큼 차분하게 보여준다.
"시몽, 알고 보면 요즘 말로 'MZ'." 낭만의 화신처럼 보이지만, 현실의 시몽은 꽤 철이 없다. 변호사 수습 주제에 사랑에 빠졌다고 결근하고, 술에 절어 있고, 직업의식이라곤 찾아보기 어렵다. (이건 과한 해석이 아니라 원작에도 그대로 나온다 — 로펌에 무단결근과 근무태만을 상습적으로 저지르는 인물이다.) 부자 어머니라는 뒷배가 없었으면 진작 잘렸을 사람. 그 미성숙이 폴에게는 모성애를 자극하지만, 동시에 "이 사람에게 미래를 맡길 수 있나"를 망설이게 만든다.
"덜 사랑하는 쪽이 덜 다친다." 어쩌면 폴에게 로제는 '통제 가능한' 관계다. 이미 수없이 실망해봤으니 더 잃을 것도 없다. 반대로 오직 나만 바라보던 시몽이 언젠가 등을 돌린다면 — 그 배신은 상상조차 하기 싫은 고통일 것이다. 덜 사랑하기에 덜 다치는 자리를, 폴은 본능적으로 택한 게 아닐까.
"사강은 일단, 재밌다." 이 책으로 사강에 입문했다가 결국 다른 작품까지 찾아 읽게 됐다. 묘사의 밀도는 작품마다 차이가 있지만 줄거리만큼은 도파민이 터진다. 사위와 장모의 치명적이고 비극적인 사랑을 다룬 『마음의 심연』 같은 작품까지 있을 만큼, 사강의 소재 선택은 과감하다. 고전이라고 어렵게 접근할 필요 없이, 그냥 잘 읽히는 이야기꾼이다.
"그 드레스는 시몽이었다." 작중 등장하는, 몸매를 드러내는 화려한 드레스를 시몽의 은유로 읽은 사람도 있었다. 아름답지만 폴에게는 끝내 어울리지 않는 옷 — 시몽의 사랑이 딱 그랬다는 것이다. 좋은 옷이라고 다 내 옷이 되는 건 아니다.
"13장에서 폴이 조금 미더워졌다." 폴이 로제에게 완전히 매몰된 사람인 줄로만 알았는데, 13장의 말다툼 장면에서 제 할 말을 또박또박 하는 폴을 보고 '그래도 정상적으로 사고하는 사람이구나' 하고 조금 안심했다. 폴이 단순한 수동적 인물이 아니라는 걸 짚어준 대목.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와 '브람스 같은 건 집어치워'." "브람스 같은 건 집어치워"는 사실 로제가 실제로 내뱉은 말이다. 폴이 시몽과 브람스 공연을 보러 갔다는 걸 두고 말다툼하던 장면에서 나온다. 한쪽은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며 낯선 세계로 초대하는 사람, 다른 한쪽은 "브람스 같은 건 집어치워"라며 그 세계를 일축하는 사람. 두 남자의 차이가, 이 두 마디로 그대로 갈렸다.
역할 놀이 — 사랑은 상대가 원하는 남자친구/여자친구의 모습에 맞춰 연기하고, 그 역할에 스스로 빠져드는 과정이라는 정의. 어느 정도의 연기는 사랑의 일부라는 시각.
온전한 자기표현 — 반대로, '나의 단점까지 보여줄 수 있느냐'가 사랑의 핵심이라는 의견. 결점을 드러내도 이해받으리라는 신뢰가 바탕이어야 하며, 시몽처럼 가면을 쓰고 단점을 숨기는 모습은 진짜 사랑이라 보기 어렵다는 것.
삶의 결의 일치 — 취향이 달라도 '삶을 대하는 태도'가 맞는 게 사랑이라는 의견. 나태함이든 안정 지향이든, 결이 비슷할 때 비로소 이해와 사랑이 가능하다.
여기서 흥미로운 모순. 1번에서 누군가는 "시몽은 가면을 쓰니 진짜 사랑이 아니다"라고 했는데, 정작 작품 속 '고독형' 장면에서는 시몽이 폴에게 "가면을 벗고 행복할 의무를 다하라"고 고발한다. 가면을 쓴 건 시몽인가, 폴인가.
사실 '시몽'을 택한 사람이 더 많았다. 다만 대화에서는 로제를 택한 쪽이 길게 변론을 펼치다 보니, 마치 로제가 다수처럼 들리는 묘한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시몽
시간이 지나면 14살 차이도 여느 연인과 다름없어질 거라는 낙관, 그리고 "로제가 너무 '쓰레기' 같은 인물이라 시몽을 택할 수밖에 없다"는 의견.
로제 (변론이 길었던 쪽)
안정감과 익숙함 — 14살 연하 시몽의 불확실한 미래를 견디느니, 바람을 피우더라도 익숙한 로제로 돌아가겠다.
감정의 편안함 — 시몽 앞에서는 완벽한 모습을 유지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지만, 로제에게는 투정도 부리고 싸우기도 하는 — 감정 소모가 자유롭다. 그래서 더 편하다는 분석.
에너지 소모 회피 — 새 관계를 시작하고 새 습관을 만드는 에너지가 부족해, 결국 아는 선택(로제)을 하게 된다는 공감.
갑과 을의 본능 —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을)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갑)에게 인정받고 확인받고 싶은 욕구. 이미 얻은 사랑보다 얻지 못한 사랑에 더 끌리는 본능.
자아의 확장 — 사람은 본질적으로 이기적이라, 내가 사랑하는 상대를 '나의 확장'으로 인식한다. 나만큼 소중한 그 사람을 쫓는 것은 자연스러운 이치라는 철학적 접근.
주체적인 행복 — 남이 나를 좋아하는 것보다, 내가 누군가를 좋아할 때 느끼는 행복이 연애를 성립시키는 더 큰 동력이라는 의견.
이 발제는 폴(→로제)과 시몽(→폴) 두 관계 모두를 관통한다. 사강 자신이 작품의 테마를 "고독과 사랑"이라 못 박았다는 점에서, 모임이 독립적으로 "사랑은 결국 나로부터 시작된다"에 도달한 건 작가의 문제의식과 정확히 같은 자리였다.
5분(혹은 5초)의 법칙 — 5분 이상 고민하게 되는 건 내 것이 아니라고 보고, 생각이 떠오른 순간 바로 실행에 옮긴다.
후회와 재미 — "미래의 내가 어떤 선택을 덜 후회할까", 그리고 "재미가 있느냐 없느냐". 새 경험을 자산으로 여겨 일단 시도한다.
일단 해보고 결정 — 고민보다 일단 해보고, 맞지 않으면 과감히 포기.
공교롭게도, 이 세 기준은 폴이 끝내 하지 못한 바로 그것이다. 폴의 비극은 결정하지 못하고 익숙함에 주저앉는 데 있다. 멤버들의 결단력이 폴과 정반대라는 점이, 인물을 한 겹 더 또렷하게 만들었다.
외로움이 바탕 — 폴의 경우 본질적으로 외로움이 컸을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
사랑의 씨앗 — 하지만 외로움이 사랑으로 자라는 씨앗이 될 수 있고, 폴이 시몽의 사랑스러움에 설레어 먼저 키스한 지점 등을 보면 순수한 설렘도 분명 있었다는 반론.
결국 이기심 — 상대가 행복하길 바라 떠나보내는 것조차, 불행해하는 상대를 보는 괴로움을 견디지 못하는 '나를 지키기 위한' 이기심이라는 통찰. 사랑이라는 감정 자체가 나로부터 시작되기에 이기적일 수밖에 없다는 시각.
비평가 미셸 구겐하임은 사강에게서 사랑이 "자기 고독에 대한 가망 없는 응답"이라고 봤다. 외부 비평을 보지 않고 같은 결론에 닿았다는 점에서, 이날 토론의 밀도가 높았다.
시몽이 폴을 "사랑을 스쳐 지나가게 한 죄, 행복해야 할 의무를 소홀히 한 죄, 핑계와 편법과 체념으로 살아온 죄"로 고발하고 '고독형'을 선고하는 장면에서 출발한 발제. (살짝 오글거린다는 데 다들 동의.)
걱정 과다죄 — 일어나지도 않은 일(여행지 해파리 걱정 등)을 미리 사서 걱정하며 에너지를 낭비하는 죄.
사실적시죄 — 친구들의 실수를 놓치지 않고 놀려먹기를 즐기는 성향.
게으름죄 — 스스로를 고발한다면 게으름을 꼽겠다는 의견.
상대방의 사랑 — 내 마음은 계속 변하지만, 상대가 보여주는 무조건적 신뢰를 보면 그 사랑을 더 믿게 된다.
나의 사랑 — 타인의 속마음은 끝내 알 수 없으니, 내가 직접 느끼고 확신하는 내 안의 마음을 더 신뢰한다. 두 입장이 팽팽했다.
폴이 더 밉다 — 로제는 그저 경쟁자일 뿐, 최종 선택권을 쥐고 나를 버린 건 결국 폴이기 때문.
로제가 밉다 — 사랑하는 사람을 방치하고 '보리자루' 취급한 로제에 대한 미움이, 적어도 초반에는 더 클 것이라는 의견.
행운 — 스물다섯에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해본 경험은, 아프더라도 성장의 밑거름이 되는 행운.
불운 — 진심을 다했음에도 버림받은 기억이 자존감에 상처를 남기고, 시몽을 또 다른 '로제'로 흑화시킬 수도 있다는 우려.
가능하다 — 플라토닉 러브는 가능하며, 대화가 통하고 정신적으로 교류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어렵다 — 인간은 DNA를 남기려는 본능이 있기에, 육체적 끌림이 전혀 없는 상태가 온전히 유지되기는 힘들다는 현실론.
결론 — 다만 대부분, 육체적 끌림만 있고 대화가 안 통하는 관계보다는, 육체적 끌림이 0이어도 정신적으로 잘 통하는 관계를 택하며 그 중요성에 무게를 실었다.
2주 전 약속대로, 우리는 사강을 들고 다시 모였다.
연애를 주제로 한 책이다 보니, 이날은 자연스레 맥주 한 잔이 필요했다. 누군가의 연애관을 솔직하게 꺼내놓고 또 듣는 일이, 맨정신으로는 영 쑥스러웠던 탓이다.
지난 『약속의 세대』는 단편 '모음'이라 하나의 이야깃거리를 깊게 파고들기엔 아쉬움이 있었다. 반면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하나'의 소설이라, 한 이야기를 끝까지 붙들고 깊이 나눌 수 있었다. 폴이라는 같은 인물을 두고 이렇게까지 다른 답이 오갈 수 있다는 것 — 그 관점의 차이를 확인하는 재미가 컸다.
무엇보다, 지난 모임보다 한층 가까워진 느낌이라 좋았다. 장난도 치고, 훨씬 더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었다. 다음 모임이 벌써 기대된다.
참고 자료: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79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작품 해설, 위키백과(한/영)·나무위키, 민음사·교보문고 도서 소개, 시카고/휴스턴 심포니 브람스 교향곡 3번 해설, 독자 서평(브런치 등). 작품 인용은 모두 발췌·요약본이며, 일부 해석은 모임 참여자들의 견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