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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6-12|7min read|912 views|❤️ 12|#etc

『약속의 세대』-힛치 올드앤뉴 독서 모임 1회차

『약속의 세대』 백온유 —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우리는 모여서 그 얘기를 했다

TL;DR

『약속의 세대』 백온유 —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우리는 모여서 그 얘기를 했다

Sangwoo Yang

Sangwoo Yang

@IGhost-P

힛치 올드앤뉴 독서 모임 1회차

『약속의 세대』 백온유 —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우리는 모여서 그 얘기를 했다

일시 6–7월 시즌 첫 모임 · 장소 강남역 도보 3분 · 백온유 소설집 『약속의 세대』(문학동네, 352쪽)


0. 이 책, 뭐 하는 책인가

백온유의 첫 소설집이다. 2017년 장편동화로 데뷔, 2020년 『유원』으로 창비 청소년문학상, 2025년 「반의반의 반」으로 젊은작가상 대상. 그러니까 데뷔 9년 만의 첫 소설집인데, 작가 본인이 마음에 드는 작품이 다 모일 때까지 기다렸다고 한다. 2021년부터 2025년 사이에 쓴 단편 중 일곱 편만 골라 실었고, 출간 하루 만에 중쇄를 찍었다. 김연수와 이적이 추천사를 썼다.

제목은 수록작 「사망 권세 이기셨네」에 나오는 ‘약속 세대’에서 왔다. 작가의 정의를 옮기면 이렇다 — 헌신하면 보상이 따를 것이고 인내하면 찬란한 미래가 올 거라는 약속을 바라보며 살지만, 그 약속이 자꾸만 파기당하며 고통받는 사람들. 우리가 모여서 던진 첫 질문이 “약속이란 왜 하는 것일까”였으니, 출발점부터 작가와 같은 자리에 서 있었던 셈이다.

전작과의 연결고리도 있다. 씨랜드 참사를 모티브로 한 「내가 있어야 할 곳」은 화재 사고를 다룬 『유원』과, 할머니를 간병하는 손녀의 이야기 「의탁과 위탁 사이」는 돌봄 소설 『페퍼민트』와 이어진다. 백온유 월드의 좌표를 아는 독자라면 더 깊이 읽히는 구조다.

0.5. 수록작 일곱 편, 짧게

스포일러는 최소한으로. 모임에서 언급된 작품 위주로 정리한다.

  • 「나의 살던 고향은」 — 다이어트 보조제 회사에서 과로하던 영지가 엄마가 다쳤다는 전화를 받고 고향 ‘한서’로 내려간다. 작가가 중학생 때까지 살았던 경북 영덕의 시골 경험이 배어 있는, 작가의 자칭 최애작. 책의 문을 여는 소설이다.
  • 「반의반의 반」 — 치매 증상을 보이는 할머니 영실의 사라진 돈 5천만 원을 쫓는 손녀 현진. 젊은작가상 대상 수상작. 우리 모임의 자체 추리가 발동한 작품이기도 하다(후술).
  • 「의탁과 위탁 사이」 — 할머니에게 길러졌다는 부채감으로 간병을 자처했지만 속으로는 적개심을 품은 연수. ‘가장 불행한 인물’ 발제에서 가장 뜨거웠던 소설.
  • 「내가 있어야 할 곳」 — 씨랜드 수련원 참사에서 살아남은 하나가 캐나다의 이모 부부에게로 떠난다. 살아남은 자와 잃은 자가 한집에 사는 이야기.
  • 「광일」 — 택시기사 광일의 하루를 따라가는 미발표작. 처음엔 책임감 있는 가장처럼 보이다가 점점 섬뜩해진다. 작가는 이 작품에 대해 악인도 또 다른 깨달음을 줄 수 있다고 믿게 됐다며 “이제는 겁 없이 쓴다”고 말했다.
  • 「회생」 · 「사망 권세 이기셨네」 — 두 편 모두 친구 사이의 배신을 다룬다. 후자는 사이비 교단에 얽힌 미리와 세주의 이야기로, 책 제목의 출처.

1. 한줄평 — 다섯 개의 첫인상

“힘들었다? 불편했다? 이 감정을 뭐라 해야 할까.” 위선과 만용과 부끄러움. 관계 속에서 분명히 목격하지만 차마 입 밖에 내지 못하는 감정들이 적나라하게 적혀 있다. 감정에 이름을 붙이지 못하게 만드는 것, 어쩌면 그게 이 책의 작동 방식이다.

“마지막 단편이 다 했다.” 초반은 어둡고 손에 잘 잡히지 않았는데, 마지막 단편이 희망의 결로 끝나며 책 전체의 인상을 뒤집었다. 어둠을 한참 통과한 뒤의 빛이라 더 선명하다.

“작가의 말은 다 읽은 사람만 이해한다.” 책 맨 앞장의 ‘위태로운 평온과 불안’(참여자의 기억에 의존한 인용이다)이 처음엔 추상적이었는데, 마지막 장을 덮고 나니 그 문장이 책 전체의 요약이었다.

“이건 소설이 아니라 내 타임라인이다.” 코로나, 씨랜드, 오송 지하차도. 90년대생의 기억에 박힌 사건들이 전시되지 않고 인물들의 삶 사이로 흘러간다. 작가 스스로 문학은 현실의 시뮬레이션이라는 말에 공감한다고 했으니, 의도된 몰입이다.

“소설 무경험자, 하루 만에 완독.” 소설을 읽어본 적이 없어 걱정했는데 단편집의 호흡이 살렸다. 결과: 하루 만에 다 읽음.

2. 발제 — 아홉 개의 질문과 우리의 대답

Q1. 약속이란 왜 하는 것일까

  • 약속은 서로에 대한 기대가 있어서 하는 것이다. 기대가 없으면 약속할 이유도 없다.
  • 상대가 꼭 타인일 필요는 없다. 자기 자신과의 다짐도 약속이다.

작가가 정의한 ‘약속 세대’의 핵심이 기대와 믿음이라는 점에서, 우리의 결론은 작가의 문제의식과 정확히 포개진다. 기대 없는 약속은 없고, 그래서 모든 약속은 파기될 위험을 처음부터 품고 있다.

Q2. 온전한 선의란 존재하는가

  • 목적이 선의여도 의도가 자기만족인 경우가 많다.
  • 반론: 존재한다. 뒷사람을 위해 문을 잡아주는 것처럼, 의도조차 없이 베풀어지는 선의가 있다.
  • 양심과 선의는 사회집단에서 발현되는 행위의 하나일 뿐, 인간만의 것도 아니다.
  • 이날의 결론: 선의의 판정 권한은 받는 사람에게 있다. 혼자 엘리베이터를 타고 싶은데 굳이 기다려주는 ‘선의’는 불편이다. 주는 쪽의 마음만으로 선의는 완성되지 않는다.

한 서평자가 헌신했지만 기만당하고 인내했지만 배신당한 이들의 이야기라고 이 책을 요약했는데, 선의와 기만이 한 끗 차이라는 점에서 이 발제는 책의 한가운데를 통과한다.

Q3. 믿었던 약속이 무너졌을 때, 각자의 생존법

토론이 가장 뜨거웠던 발제. 두 진영이 갈렸다.

  • 방어파 — 애초에 기대하지 않는다. 약속은 언제든 무너질 수 있음을 상수로 두면, 실제로 무너져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 직면파 — 상처를 예상하고 미리 기대를 접는 건 너무 슬프다. 차라리 완전하게 기대하고, 무너져보고, 울어도 보는 쪽이 낫다.

소설 속 인물들이 바로 약속이 파기당한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이 발제는 그들에게 건네는 우리의 위로법이기도 했다. 결론은 없었다. 결론이 없어서 좋은 발제였다.

Q4. 가족을 위해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가

가족을 지키려 제 삶을 망치는 것 — 사랑인가, 희생인가, 책임감인가.

  • 상황에 따라 다르다. 중범죄라면 오히려 가족이 정당하게 처벌받게 하는 것이 가족을 위한 일이다.
  • 입장을 바꾸면 가족 역시 내가 범죄를 저지르길 원하지 않을 것이다.
  • 제 삶을 망치는 행동을 사랑이나 희생이라 부르고 싶지 않다. 그건 책임감에 가깝다.

「나의 살던 고향은」에서 출발한 발제다.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무엇까지 감당해야 하고 무엇까지 덮을 수 있는지 — 고향 ‘한서’에서 영지가 마주하는 진실은 이 질문을 정면으로 통과한다. 사랑·희생·책임감 중 무엇으로도 깔끔하게 이름 붙지 않는 그 선택 앞에서, 우리는 결국 ‘책임감’에 한 표를 던졌다.

Q5. 나에게 고향이란 — 안락인가, 도주의 대상인가

「나의 살던 고향은」에서 출발한 발제. 공교롭게도 작가 본인의 유년 — 집 밖에 나서면 “누구네 집 딸 누구”로 식별되는 마을 — 이 가장 짙게 밴 작품이다.

  • 지방 출신 멤버의 증언: 코로나 시기, 확진 안내 문자가 오기도 전에 마을 사람들은 이미 누가 걸렸는지 알고 있었다. 고향은 숨막히는 공간이다. 소설 속 ‘한서’의 풍경과 정확히 겹치는 경험담.
  • 고향은 있지만 향수는 없다. 돌아가고 싶지 않다.
  • 줄곧 같은 지역에 살아온 멤버에게 고향은 그저 ‘본가에 간다’ 정도의 감각.
  • 부모님이 이사를 가버리자 그곳이 더는 고향으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증언도. 결론: 고향의 단위는 공간이 아니라 사람일지도 모른다.

Q6. 작가는 왜 정답을 주지 않는가

소설 속 청년들은 대부분 열린 결말이나 허무한 현실 앞에 선다.

  • 열린 결말을 선호하는 작가 계보가 있고, 백온유는 그쪽이다.
  • 추리소설 애호가 멤버는 빈칸을 직접 채우는 재미를 봤다. 이날의 자체 추리: 「반의반의 반」의 사라진 돈, 보호사가 훔쳤다. (공식 입장 아님)
  • 구조 분석도 나왔다. 이야기가 인물→사건으로 흐르면 사건이 끝나야 닫히는 장편이 되고, 사건→인물로 흐르면 심리 묘사가 끝나는 지점에서 닫히는 단편이 된다. 이 책의 열린 결말은 단편이라는 형식의 자연스러운 귀결일 수 있다.

알라딘 측 소개도 비슷한 말을 한다. 독자는 기대하고 예상하고 인물을 속단하며 읽다가, 이야기가 뒤집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고. 열린 결말은 미완이 아니라 설계다.

Q7. 좋은데 싫은, 싫은데 좋은 — 기만적인 감정

수록작 대부분이 성인이 됐지만 10대의 상처에 매여 사는 인물들의 이야기다. 작가는 유년의 기억이 한 사람을 형성하고, 과거의 일들이 모여 한 사람의 겹을 만든다고 말한 바 있다. 양가감정은 이 책 인물들의 기본값이다.

  • 그 감정의 이름은 ‘심술’이다. 특히 가족과 있을 때 자주 발동한다.
  • 가족이 좋은 건 분명한데, 나도 모르게 심술을 부린다.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가장 모난 마음이 나오는 건 왜인가.

Q8. 가장 불행한 인물은 누구인가

  • 미리와 세주 — 사이비 교단의 피해자이자, 부모들마저 모두 나쁜 결말을 맞는 이중의 비극.
  • 연수의 할머니 — 이날의 압도적 득표. 위탁된 연수를 지극정성으로 키웠지만, 연수는 정작 분노해야 할 대상(부모, 옆집 할아버지)이 아니라 가장 만만한 할머니에게 화를 분출한다. 할머니는 그걸 알면서도 연수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다. 한 멤버의 공식 입장: “연수가 밉다.”

참고로 한 리뷰어는 백온유가 인간의 어둡고 악한 면을 가감 없이 드러내면서도 그들을 단순한 악인으로 남겨두지 않는 작가라고 썼다. 연수를 미워하면서도 끝내 단죄하지 못하는 우리의 마음이, 정확히 작가가 설계한 자리다.

Q9. 수영과 연지 — 인정 욕구의 줄다리기

괜찮아졌음을 증명하고 싶은 수영, 거짓말의 피해자로서 보상받고 싶은 연지.

  • 연지는 이미 외로움을 해소할 가족이 생겨 수영에게 무심하다. 수영에게는 어떻게든 연지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남아 있다.
  • 이날 가장 정교했던 해석: 역할의 역전. 원래 연지는 주는 역할, 수영은 받는 역할이었다. 수영이 갑자기 주는 역할을 자처하자 그 역전이 연지에게 불편했을 것이고, 연지가 그릇을 가져가지 않은 이유도 거기에 있다.
  • 전망: 수영은 연지가 뭐라 생각하든 계속 인정을 갈구할 것이다.

3. 닫으며

그동안 해온 건 독서 ‘스터디’였다. 정해진 걸 읽고, 정리하고, 끝. 독서 ‘모임’은 처음인데, 같은 소설을 두고 전혀 다른 관점들이 오가는 게 생각보다 훨씬 좋았다. 소설이라는 게 원래 그렇다 — 혼자 읽고 덮으면 며칠 안에 휘발된다. 누군가와 이야기하는 순간에야 비로소 책장에 남는다. 『약속의 세대』는 이번 모임 덕분에 휘발되지 않았고,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생각 사이에서 혼자서는 닿지 못했을 깨달음도 몇 개 챙겼다.

장소 섭외부터 음식, 진행 준비까지 — 어느 하나 쉬운 게 없었을 텐데 이 모든 걸 꾸려준 힛치 리더에게 감사를 전한다. 첫 모임이 이 정도면, 시즌 전체가 기대되는 게 당연하다.

다음 책은 프랑수아즈 사강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다. 2주 뒤, 또 다양한 이야기를 정리해서 돌아오겠다.


참고 자료: 한국일보 백온유 인터뷰(2026.3.28), 알라딘 도서 소개, 알라딘서재·브런치 독자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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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ngwoo Yang

Written by Sangwoo Yang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웹 개발, 게임 개발, 그리고 AI에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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