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금이 장편소설 『알로하, 나의 엄마들』을 읽고 모인 힛치 올드앤뉴 세 번째 모임의 기록. 1910년대, 사진 한 장으로 하와이행을 결정한 사진신부 버들·홍주·송화의 이야기를 따라 — 낯선 곳에서 버티는 힘, 독립운동, 돈과 사랑, 이민 2세대의 정체성까지 열두 개의 발제로 대화를 나눴다.
이금이 장편소설 『알로하, 나의 엄마들』을 읽고 모인 힛치 올드앤뉴 세 번째 모임의 기록. 1910년대, 사진 한 장으로 하와이행을 결정한 사진신부 버들·홍주·송화의 이야기를 따라 — 낯선 곳에서 버티는 힘, 독립운동, 돈과 사랑, 이민 2세대의 정체성까지 열두 개의 발제로 대화를 나눴다.
Sangwoo Yang
@IGhost-P

일시 6–7월 시즌 세 번째 모임 · 책 이금이 장편소설 『알로하, 나의 엄마들』(창비, 2020)
이금이는 1984년 단편동화 「영구랑 흑구랑」으로 등단해 40년 넘게 아동·청소년문학 한길을 걸어온 작가다. 2024년에는 '아동문학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 글 부문 최종 후보 6인에 올랐다 — 한국 작가로는 최초였다. 그 작가가 성인 독자까지 겨냥해 내놓은 400쪽짜리 장편이 이 책이다. 작가는 부채와 양산과 꽃을 든 세 여성이 찍힌 낡은 사진 한 장에서 이 소설을 시작했다고 밝힌 바 있다.
배경이 되는 역사부터. 1902년 12월, 이민선 갤릭호가 102명을 태우고 제물포를 떠나 이듬해 1월 호놀룰루에 닿았다. 한국인 미국 이민의 시작이었다. 1905년까지 7천여 명이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으로 건너갔는데 여자는 637명뿐이었다. 그래서 생겨난 것이 '사진결혼'이다. 노총각 노동자가 사진을 조선으로 보내고, 처녀가 마음에 들면 자기 사진을 보내 혼인을 결정하는 것. 1910년 최사라라는 스물세 살 여성이 첫 사진신부로 호놀룰루에 도착한 이래, 1924년 미국이 동양인 이민을 막아버릴 때까지 951명의 처녀가 이렇게 하와이로 갔다. 문제는 사진이었다. 신랑들은 십수 년 전 젊을 적 사진, 잘생긴 친구의 사진, 남의 부잣집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을 보냈다. 항구에 내린 신부들이 마주한 것은 사진 속 청년이 아니라 아버지뻘의 낯선 남자였다.
소설은 1917년, 경남 김해의 어진말에서 시작한다. 의병으로 나간 아버지를 잃고 오빠마저 일본 순사에게 잃은 몰락 양반가의 딸 버들, 혼인 두 달 만에 과부가 된 부잣집 딸 홍주, 무당의 손녀라는 이유로 나고 자란 마을에서조차 천대받던 송화. 처지는 제각각이지만 조선에서는 어떤 내일도 그릴 수 없던 세 열여덟 살이, "돈을 쓸어 담고 나무에 옷이 주렁주렁 열린다"는 소문의 땅 '포와(하와이)'로 가는 같은 배에 오른다. 버들의 남편 태완은 첫아들 정호가 태어나자 가족을 두고 독립운동을 위해 중국으로 떠나고, 버들은 남편 몫까지 생계를 짊어진 채 낯선 땅을 버텨낸다. 훗날 돌아온 태완은 독립은커녕 다리를 절며 반 병자가 된 몸이었다.
제목이 이번에도 핵심이다. 소설은 내내 버들을 따라가다가 마지막 두 장에서 갑자기 딸 펄(Pearl)에게 마이크를 넘긴다. 그리고 그 순간 제목의 수수께끼가 풀린다. '나의 엄마들' — 복수형이다. 펄에게 엄마는 버들 하나가 아니었다. 버들과 홍주와 송화, 피 한 방울보다 진한 세 여자 전부였다. 하와이말 '알로하'가 만남의 인사이자 이별의 인사이자 사랑이라는 뜻임을 생각하면, 낯선 땅에서 서로의 가족이 되어준 여자들의 이야기에 이보다 잘 맞는 제목은 없다.
"이건 거의 청소년 소설인데, 그게 오히려 좋았다." 주제가 명확하고 서사가 단순해서 수능 지문에 나와도 어색하지 않겠다는 평.(positive)
"결말에서 마이크가 펄에게 넘어간다." 내내 버들을 따라가던 소설이 마지막 두 장에서 딸 펄의 시점으로 전환되는 구성이 신선했다는 반응. 1세대의 고생담으로 닫힐 뻔한 이야기가, 그 고생을 물려받은 2세대의 눈으로 다시 열린다. 제목의 '엄마들'이 완성되는 것도 정확히 이 지점이다.
"이름 두 개에 정체성 문제가 통째로 들어 있다." 한국식 이름 '정호'와 미국식 이름 '펄'. 같은 집에서 자란 남매의 이름이 갈리는 순간, 이민 2세대가 평생 짊어질 질문 — 나는 조선인인가 미국인인가 — 이 이름 두 개로 요약된다. 발제 4번(정호의 선택)이 뜨거웠던 것도 이 대비가 남 일 같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타지에서 한국어로 대화하면 속이 풀린다." 포와의 조선인들이 서로를 붙들고 산 이유를, 각자의 경험으로 증언했다. 독일 간호사들이 모이던 게스트하우스에서, 뉴질랜드의 클라이밍장에서 — 낯선 땅에서 우연히 한국인을 만나 모국어로 떠들 때의 그 "속이 풀리는 느낌". 버들들이 서로에게 왜 그렇게 절박하게 붙어 있었는지, 몸으로 이해가 된다는 이야기.
"수직 문화는 1918년 사탕수수 농장에만 있는 게 아니다." 소설 속 고난을 이야기하다 보니 자연스레 각자의 '농장' 이야기가 나왔다. 보고를 위한 보고, 실무를 모르는 상사의 고집 — 시대와 장소만 바뀌었지, 견디는 일의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더라는 씁쓸한 공감. 이 이야기는 발제 12번에서..
중독과 덕질 — 타지 근무 시절 외톨이가 됐을 때 연예인 덕질로 버텼고, 이후 테니스 같은 다른 취미로 중독 대상을 옮겨가며 외로움을 희석해옴.
자기 계발과 자존감 — 인간관계가 무너져도 "나는 남아 있다"는 생각으로 운동과 공부에 집중하며 자존감을 지킨다는 의견.
계란 바구니 나누기 — 연인, 친구, 취미로 관심을 분산하는 포트폴리오 전략. 한 바구니가 깨져도 삶 전체가 무너지지 않게.
단순한 즐거움 — 대전 자취 시절, 퇴근 후 유튜브를 틀어놓고 마시던 고량주와 캔맥주가 최고의 위안이었다는 실전파의 답변.
답을 모아놓고 보니 공통점이 있다. 전부 '선택지'가 있는 사람의 기술이라는 것. 버들과 홍주와 송화에게는 덕질도, 퇴근 후 맥주도, 옮겨 갈 바구니도 없었다. 그들에게 허락된 유일한 바구니는 서로이지 않았을까?
양가감정 — 독립운동가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내 가족이라면 "제발 가지 말라고 울고불고 매달렸을 것".
간접적 기여 — 총을 들기보다는 "안 걸리게 돈을 보내주는 식"의 지원이 현실적인 최대치라는 자기 진단.
상황의 힘 — 막상 닥치면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의견과 함께, 평화로운 시대의 현대인은 그 시절 사람들보다 나약할 수밖에 없다는 자조도 나왔다.
덧붙일 역사 하나. "안 걸리게 돈을 보내주는" 그 간접 기여를 실제로 한 사람들이 바로 사진신부들이었다. 사탕수수밭에서 하루 종일 허리를 꺾고 받은 품삯에서, 그들은 꼬박꼬박 독립운동 후원금을 떼어 보냈다. 우리가 상상으로 겨우 도달한 최대치가 그들에게는 일상이었다.
'금융치료'를 택한 현실파가 압도적이었다.
100억 — "페라리에서 울고 싶다"는 선언과 함께, 남편이 외롭게 하면 친구들과 놀면 되고 정 안 되면 비서를 고용해 반겨주게 하면 된다는 유쾌한 설계. 친구들에게 월급을 주며 곁에 두는 네이마르의 '호미 문화'가 근거 사례로 제출됐다.
1,000만 원 — "집에 들어갔을 때 누군가 나를 진심으로 반겨주는 감정은 100억으로도 살 수 없다"는 낭만파의 반론.
생각해보면 사진결혼이야말로 100년 전의 이 발제였다. "돈을 쓸어 담는다"는 소문 하나에 얼굴도 모르는 남자와의 혼인을 건 처녀들 — 그들이 도착해서 확인한 것은, 돈도 사랑도 소문과는 다르다는 사실이었다.
시민권과 정체성 — 정호는 조선 땅을 밟아본 적도 없고 영어가 더 익숙한 세대다. 주류 사회에 편입되고 싶은 열망을 이해한다는 쪽이 많았다.
후회 없는 선택 — "부모 말을 들었다가 나중에 차별받으면 부모를 원망하게 된다. 차라리 스스로 선택하고 스스로를 원망하는 게 낫다." 정호의 선택을 가장 강하게 변호한 논리였다.
아버지 태완은 조선의 독립을 위해 가족을 떠났고, 아들 정호는 미국인이 되기 위해 전쟁에 나간다. 아버지와 아들이 각자 목숨을 건 방향이 정반대라는 것
버들 — 최다 득표. 홍주보다 '운'이 좋았고, 태완이 무뚝뚝해도 결과적으로 가장 괜찮은 조건이었다는 평가.
홍주 — 가장 주체적이고 멋진 인물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었지만, 그 파란만장한 운명을 직접 감당하는 건 다른 문제라는 판정.
송화 — 미래를 보는 능력을 갖고도 입이 무거워 모든 것을 혼자 감내해야 했던, 가장 불쌍한 인물로 꼽혔다.
흥미로운 건 판단 기준이었다. '누가 가장 멋진가'를 물으면 홍주인데, '누구로 살겠는가'를 물으면 버들이다. 우리는 주인공의 삶을 동경하면서도, 막상 고르라면 운 좋은 조연의 삶을 고른다. 남의 서사와 나의 인생은 다른 문제니까.
극단적 농담 — "독살을 고민했을 것 같다", "감기라도 옮겨서 수명을 단축시킬 수는 없을까". 잔인하지만, 그만큼 그 상황의 절망에 이입했다는 뜻이기도 했다.
탈출 vs 인내 — "돈 들고 튀었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지만, 갈 곳이 없는 현실에서는 "수명이 얼마 안 남았으니 죽을 때까지 버티자"고 합리화하지 않았겠느냐는 슬픈 공감이 뒤따랐다.
이건 소설의 각색이 아니라 기록된 역사다. 실제 신랑들은 십수 년 전 사진과 친구 사진과 남의 집 마당을 빌려 신부를 속였고, 호놀룰루 항구는 사진과 실물의 낙차에 주저앉는 신부들의 통곡으로 유명했다. 배는 이미 떠났고, 돌아갈 뱃삯은 없고, 조선의 가족은 딸이 보낼 돈을 기다린다 — '버티자'는 합리화는 그들이 가진 유일한 생존 장비였을 것이다.
논리, 그다음엔 포기 — 대부분 논리적 설득을 먼저 시도하지만, 상대가 비논리적이거나 개선 의지가 없으면 빨리 포기하고 거리를 두는 쪽을 택한다.
감정 소모 경계 — 요즘 세상의 언쟁은 결국 감정 싸움으로 번진다. "속으로 일기를 쓰고 만다", "결론 내지 않고 평행선으로 헤어지는 게 낫다"는, 성숙하지만 씁쓸한 생존술.
모닝 루틴 — 회사에 모든 에너지를 뺏기지 않으려고, 아침에 운동·명상·독서 등 내가 좋아하는 일을 먼저 해둔다.
출근 전 커피 클럽 — 모르는 사람들과 시시콜콜한 주제로 떠드는 아침 모임이 회사 스트레스의 완충제가 된다.
제철 과일 — 퇴근 후 냉장고에서 기다리는 수박과 복숭아. 거창하지 않아서 더 확실한 힐링.
AI와 함께하는 3개월 회고 — 분기마다 혼자 워케이션을 떠나 '일·관계·성장·휴식' 네 카테고리로 삶을 3인칭 시점에서 정리하고, 그 기록을 AI에게 보여주며 상담받고 다음 분기 목표를 세운다는 루틴.
Q1이 '낯선 곳에서 버티는 힘'이었다면 이건 '익숙한 곳에서 버티는 힘'인데, 답의 구조가 똑같다는 게 재미있다. 결국 사람은 어디에 있든, 하루 어딘가에 회사도 관계도 침범 못 하는 자기만의 조각을 심어놓고 그 힘으로 버틴다.
조건부 지원 — "평생 원망받기 싫어서" 일단 시켜주되, 2~5년 기간을 정해두고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하게 한 뒤 결과에 책임지게 하겠다는 의견이 다수.
혹독한 사랑 — 일부러 벽에 부딪혀 좌절을 맛보게 하거나, 객관적 자료를 직접 찾아보게 해 현실을 스스로 마주하게 하겠다는 방식도 제안됐다.
"원망받기 싫어서 시켜준다"는 말과 "스스로 선택하고 스스로를 원망하는 게 낫다"는 Q4의 답은 정확히 같은 자리에서 만난다. 부모 자리에서 답하든 자식 자리에서 답하든, 우리는 결국 선택의 소유권 문제로 돌아온다. 원망은 견딜 수 없고, 후회는 그나마 견딜 만하다.
영화 — 실제 사건을 다룬 <관상>,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언더독의 반란 <리바운드>.
애니메이션 — 한 멤버가 일곱 번을 봤다는 <슬램덩크>. 뜨거운 서사와 언더독 정신으로 만장일치에 가까운 추천을 받았다.
현재 — 미래는 막막하고 과거는 되돌릴 수 없으니 "지금 이 순간"이라는 답이 지배적이었다.
과거 — 과거를 통해 성장한다는 소수 의견도 있었지만, "기억을 가진 채 돌아가 주식을 사는 게 아니라면" 그 경쟁을 다시 겪고 싶지는 않다는 단서가 붙었다.
사진신부들은 정반대의 사람들이었다. 현재를 통째로 갈아 넣어 오지 않은 미래 하나에 건 사람들. 우리가 (또는 펄과 정호가) '지금 이 순간'을 최우선으로 꼽을 수 있는 건, 어쩌면 누군가 미래에 전부를 걸어준 덕분이지 않을까?
회사에서의 무력감 — 실무를 모르는 상사의 "보고를 위한 보고", AI로 만든 조악한 포스터를 고집하는 대표. 정작 중요한 일이 아니라 이런 데에 에너지를 낭비할 때 회의감이 밀려온다.
건강 — 돈을 벌고 일을 해내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가장 소중한 건강이 늘 뒷전으로 밀린다는 데에, 가장 깊은 공감이 모였다.
버들, 홍주, 송화는 사탕수수밭에서도 잊지 않았다. 공부하겠다는 꿈, 고향으로 보낼 돈, 지켜야 할 사람들. 잊을 수 없어서가 아니라 잊지 않기로 해서였을 것이다.
단편집(『약속의 세대』)으로 시작해 연애소설(『브람스를 좋아하세요...』)을 지나, 이번에는 역사소설이었다. 책이 바뀌니 대화의 반경도 바뀐다. 지난 모임이 사랑이라는 한 우물을 판 시간이었다면, 이번에는 - 버티는 힘, 독립운동, 돈과 사랑, 정체성, 부모 노릇, 일과 건강까지, 삶 전체로 이야기가 넓어졌다.
곁가지 이야기도 재밌었다, 다음책인, 헤르만 헤세 『싯다르타』의 갑작스러운 역주행을 두고 "현대인들이 너무 힘들어서 결국 구도자를 찾는 게 아니냐"는 분석과 "인생 책이라며 호들갑 떠는 인스타 감성"에 대한 냉소가 팽팽하게 오갔다. 하지만 책 읽는 사람들의 판이 조금씩 넓어지고 있다는 것만은, 어느 쪽 해석으로도 부정하기 어렵다.
세 번째 모임. 이제는 편하게 장난치고, 다음 8-9월 모임을 기다리고, 누구의 연애관도 직장 상사도 꺼내 얘기 할 수 있는 사이가 됐다. 부채와 양산과 꽃을 든 세 여자의 사진 한 장에서 시작된 소설을 읽고, 우리는 각자의 버티는 기술을 꺼내놓고 돌아갔다. 다음 책이 벌써 궁금하다.
참고 자료: 창비·교보문고·알라딘 도서 소개, KBBY 안데르센상 소식, 부산일보·독립기념관·한국이민사박물관의 사진신부 관련 자료, 독자 서평(브런치·금천in 등). 작품 관련 서술은 발췌·요약이며, 해석은 모임 참여자들의 견해입니다.